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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08 14:29
빵에 대한 사색
 글쓴이 : TISE
조회 : 242  
   3..빵에 대한 사색.hwp (18.5K) [0] DATE : 2016-06-08 14:30:08


빵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지긋지긋한 가난을 면해보려 지중해를 건너던 아프리카 난민들의 배가 전복되어 수백 명이 희생되었다는 뉴스 속보를 시청하면서 그 끔찍함에 전율하면서 생각이 복잡해진다.

  

몇 해 전 스페인 바로셀로나에 갔을 때, 람블라 거리 끝자락 쯤, 콜럼버스 동상이 서 있는 항구 들머리에서 보따리 행상을 하던 아프리카 젊은이들이 떠오른다. 땡볕에 무방비로 서 있는 그들 발밑에 펼쳐진 옹색하기 그지없던 썬글라스와 조개목걸이와 조악한 생필품 몇 점과 함께.


그 러나 그 옹색한 물건들, 그들의 빵이자 가족의 목숨이자 자국의 르네상스를 위한 밑천이기도 할 그것들을 거들떠보는 여행객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무료하게 서성이며 형형색색의 요트들이 마티스의 그림처럼 강렬하게 떠 있는 지중해 너머에 가뭇없이 눈길을 주던 그들.


목숨을 내걸고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탈출하지 못한 깊은 빈곤만큼이나 질척하던 그들의 깊은 눈...


필 리핀 배낭여행 중에 마닐라 베이의 저녘 노을이 아름답다하여 일부러 찾은 일이 있었다. 해질녘까지 여유가 있어 둑방을 거니는데, 수로에서 낚시를 하는 소년이 눈에 띄었다. 꺾지 같이 생긴 물고기를 낚아채는데 솜씨가 ‘꾼’의 경지였고, 간간이 낚싯밥을 갈면서 담배를 피워 무는데, 그 또한 보통 능숙한 게 아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배낭 속 음료를 꺼내 권하며 말을 트는데 성공하고, 즉석에서 낚시 개인지도를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뭘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졸리비(Jollibee :롯데리아 같은 곳)요” 라고 답했다. 나는 꿈을 물었으나 그는 빵으로 답했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고나 할까. 빵이 있고 나서야 꿈도 있는 것을...

팍팍한 현실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것은 과연 꿈일까.

홍성 용봉산에서 바위에다 뿌리를 박고 허공에 횡으로 매달려 오랜 세월 풍상을 견뎌온 소나무가 신통해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생에 대한 의지의 다른 이름이 꿈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렸다. 빵이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사는 게 인간이다. 꿈은 선택이지만 빵은 생존이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시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 자국에서 빵을 구할 희망이 없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절박함으로 사지에 떠밀리는 사람들.

  

동 남아 여행 내내 꿈조차 호사한 아이들은 지천으로 넘쳐났다. 델리에서는, 거리든 공원이든 인파와 소음과 흙먼지와 분뇨 냄새로 골치가 지끈거리는데, 잠시만 앉아 있으면 달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조용히 쉴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름 잔머리를 써 힌두대학 교정으로 피신하듯 하여 학내 커피숍 앞 벤치에서 모처럼 유유자적하는가 싶었는데, 꼬마 계집아이가 다가오더니 예의 또 손을 내민다. 예외는 없었다. 잔돈도 없고 배낭을 뒤져도 볼펜뿐이어서, 그걸 건네니, 잠시 들여다보던 아이가 이내 되돌려주며 쿠키 봉지를 가리킨다. 빈 봉지뿐이라는 나의 제스처에 녀석은 볼펜을 놓고는 쌔~ 하게 돌아섰다. 빵이 필요한데 연필이 무슨 소용이랴...

‘너의 나라님도 구제 못한 가난인데 난들 어쩌겠니’ 하면서도 헛헛했다.

“어린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란, 살아가는데 필요한 어떤 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라는‘에밀아자르’의 말을 지독하게 공감하면서...

  

어디서인가는 음식쓰레기로 넘쳐날 빵들, 대체 그 많은 빵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시아 여행 내내 이 질문은 반복되었다.

카 투만두에서 옛 박타프로 왕국으로 이동하기 위해 시외버스 승강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마치 물결에 밀려 떠밀리듯 육교를 건널 때였다. 계단에 걸인 한명이 죽은 듯 엎드려 있는데 그 옆엔, 강아지 한 마리가 기력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동전 몇 잎 나뒹구는 냄비짝엔 땡볕만 한가득 한데 정작 빵 한 조각 던져주는 착한 사마리아인은 보이지 않았다.

사 람도 말 못하는 짐승도 함께 굶주리고 배고픈 이곳에서 어떤 이들은 한가롭게 영혼의 안식을 얻는다는데 나는 여행 내내 이곳이 불편했다. 홑이불 한 자락 속에 열 개의 발이 꼼지락 거렸던 보릿고개를 넘어온 세대의‘배고픔’ 트라우마 때문일까.

퀭한 눈빛으로 구걸하거나 사원의 탑에 올라 앉아 멍 때리고 있는 저들, 나라님도 부처님도 구하지 못한 저 중생들을 향해‘가난은 불편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 뻥 치는 글쟁이들을 보았다.

가 난은 불편의 맨 아래 층 지하에서 칙칙하고 눅눅하게 견디고 버티는 굴욕의 다른 이름인데 말이다. 밥이나 굶지 않고 그저 순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난해서 아름다운 사람들이네 뭐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당신들의 삶이 아름답냐’고 물어보기나 했는지...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지만 계속하서 가난하게 사는 것은 본인의 잘못이다.” 라는 빌게이츠의 말도 참 한가하긴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으로 들린다.

전 에, 내 옆 짝꿍이었던 원어민교사 캐나디언 ‘콕스’는 육류, 어류는 물론 달걀이나 우유도 안 먹는 일견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 어느 날 콕스에게 당신 채식주의자냐 물었더니 아니란다. 종교적 신념 때문도 아니란다. 그럼 왜냐고 물으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개월 간 인도 네팔을 여행한 한 뒤부터 육류가 싫어졌다고 했다.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그가 여기 와서 받았을 충격의 무게를 가늠하겠다. 그 느낌 아니까.

  

그렇다면 그 많은 빵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거친 생각으로도 우리의 ‘난쏘공’ 시대에 그랬듯이 담 너머 저 쪽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는 마을의 식탁으로 필요 이상 빵이 쏠린 까닭이다.

인 도 여행이 끝날 무렵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 산다는 뉴델리와 뿌네에 들렀었다. 거기서 괜찮다는 식당이나 찻집에 들어가려면 검문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고, 그 안에 사람과 사물들은 때깔부터 달랐다. 줄곧 내가 경험한 인도 하고는 사뭇 달랐다.

한 나라 안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무능한 정권은 백성을 탓하고 백성은 업보를 탓하는 풍토를 구실로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면 그만일까.

  

이 스탄불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청년들의 얘기도 해야겠다. ‘탁심광장’ 어디쯤 밸리댄스 바, 굳이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나이트클럽쯤이랄까. 암튼 바의 중앙 좌석을 차지하고 맥주를 부어라 마셔라, 술잔을 부딪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예닐곱 명의 젊은이들. 사회자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들이 석유로 돈을 긁어모은 아랍 거부의 자녀들이 모여 파티를 즐기는 줄 알았을 터였다. 그 무렵은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참상이 외신을 타고 한국 TV까지 오르내리던 때였다. 자신들의 조국은 내전으로 백척간두에 서 있는데, 또 누군가는 저렇게 젊음을 구가하고 있는 아이러니라니...

  

종 교와 이념, 피부색깔이나 지형을 떠나 결국 본질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지나친 빵의 편중이 배고픈 누군가의 등을 떠밀어 사지로 내모는 것 아닐까. 오죽했으면 예수께서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게 쉬울 거”라 잘라 말씀하셨을까.

성 안에 사람들은 너무 먹어서 죽고 성 밖에 사람들은 굶어서 죽는 현실에서, 그래도 나는 성 안 사람 행세를 하는데 왜 마음은 이토록 불편한 것일까.

돌 이켜보면 양푼에 든 보리밥에 여섯 개의 숟가락이 드나들었던 턱없이 빵이 부족했던 시대에도 삶에는 온기가 있었다. 함께 곁불을 쬐며 추위를 넘고 콩 한 쪽도 나눠먹는 삶 속엔, 똥을 눠도 그 똥은 거름이 되었었다. 그러나 누린 것 비린 것을 탐하는 요즘 사람들의 똥은 냄새도 고약하고 거름도 못되는 똥이다. 거름도 못되는 똥을 싸기 위해 오늘도 식탁에는 빵이 넘쳐나고 아이들은 툭하면 반찬타령을 한다.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빵 한 쪽 제대로 권한 일 없이 덮어놓고 타인의 주방에 쌓이는 빵의 높이만 계측하며 살아온 것이다.

  

오늘 저녁 뉴스 속보 속, 아프리카 난민들의 수난에 일조한 내 빵의 무게를 생각하며 김선우 시인의 시를 떠올려본다.

“오늘 내가 먹은 밥은 도무지 똥이 되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