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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09 14:49
나는 알고 있다
 글쓴이 : TISE
조회 : 332  
   나는 알고 있다.hwp (15.5K) [3] DATE : 2016-06-09 14:59:17


"나는 알고 있다"의 함정


미국 뉴욕대 교수인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새무얼 루친스(Abraham Samuel Luchins)가 실시한 '물 항아리' 실험이 있다.


어린아이부터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실험 참가자들 대부분이 앞서 행한 실험에서 얻은 공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루친스는 이를 '기계화'라고 말했다. '지식의 기계화 작용'인 셈이다. 보다 빠르고 간단한 해결 방식을 활용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기계화'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한번 기록되면 좀처럼 변형되지 않는 기억의 속성 때문이다. 이것이 지식의 한계다. 다음은 《장자》'추수편'에 나오는 말이다.



"저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의 크기를 말해줄 수 없다. (井蛙不可 以語於海)
자신이 사는 우물이란 공간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拘於處也)
저 여름 벌레에게는 얼음을 설명할 수 없다. (夏蟲不可以語於氷)
여름이라는 시간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며 (篤於時也).
저 시골 동네 선비에게는 진정한 도를 설명할 수 없다. (曲士不可以語於道).
자신이 배운 것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束於敎也)


지식은 이처럼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식(識)' 혹은 '지(識)를 파자해보면 안다. 이 글자를 파자하면 '언(言)'+'음(音)'+'과(戈)'가 된다.
누군가 그저 말소리를 밖으로 내뱉을 뿐인데 그 말소리가 남에게는 창이 되어 꽂힐 수 있다는 의미다.


지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 글자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 글자가 사용된 '지식'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지식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에 대한 명확인 인식이나 이해'다. 변화와 응용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외골수적 사고를 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지식인이 많은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지식인들은 변화에 적응할 줄도 모르고 자신의 앎만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목소리가
남에게는 창이 되어 날카롭게 꽂힐 수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많아야 좋은 세상이 될까.


공자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한 '모든 것을 하나로 꿰고 있는 사람'에 답이 있다. 지식을 활용해 변화를 추적하고 응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식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런 사람을 '지성인'이라 한다. 여기서의 '성(性)'을 파자하면 '마음 심(心)'+'날 생(生)'이다. '생'은 태어남, 날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태어난 순간을 생각해보자. 그야말로 학습으로 가공되지 않은 날것이기에 순수함 그 자체다.
아무것도 없는 마음이기 때문에 어떤 지식(기억)을 넣느냐에 따라 향후 그가 갖게 될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진다.
다르다는 것은 곧 변화다. 그러므로 '성(性)'은 변화와 마음이 합쳐져 '변화시킬 수 있는 마음'으로 풀이된다.


지식에서 지성을 이루려면 아는 것을 깨뜨려야 한다. 이것이 '지각(知覺)'이다. 여기서 '각(覺)'은 '깨는 것'이다.
곧 기존의 앎을 조각조각 깬다는 뜻이다. 자신의 지식을 조각내어 분별하다 보면 지혜가 생긴다.
 지혜는 사물의 도리를 깨닫고, 선과 악을 분별하는 슬기로운 마음의 작용이다. 분별은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지혜가 두터워지면 지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식을 통해 지혜로움을 익혀야 한다. 그래야 지성인이 될 수 있다........비로소 지성의 상태에 다다랐을 때,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고 모든 사물과 상황을 꿰뚫어보는 관통(貫通)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즉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세계다.